[회고] 2021 회고록

2021. 12. 28. 18:42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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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라는 명찰을 막 달고 처음으로 써보는 회고입니다.

원래 반말을 쓰지만 조금 더 진중하게 써보기 위해 존댓말을 씁니다.

 

올해만 좀 길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 회고록이니까요.

 

- 퇴사

  1월까지는 나름대로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 직장은 제주도에 있었는데요, 며칠 전 폐업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운이 좋게 별도로 퇴직금을 정산받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 직원(이었던 사람)들은 소송을 해도 못 받은 퇴직금을 받을 수 없을거래요. 회사가 파산, 부도, 아무튼 망했습니다.

  이 회사는 망한 전적이 있는 회사인데, 메르스에 한 번 망하고, 코로나에 또 한 번 망했습니다. 저를 오래 본 사람들은 제가 얼마나 공연을 좋아하고, 전시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하지만 큰 물에서는 놀지 못하고 맨날 이 회사 뒷꽁무니를 쫒아다니면서 언젠간 주작처럼 날아오를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인지 알거에요.

  글에도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저는 제가 사랑하는 이 업계가 저를 '밀어낸다' 라고 느껴왔습니다. 결국 결말도 이렇게 아름답지 못하게 맺어졌지만, 제가 조금이라도 일찍 깨달아서 발을 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 이직 결심

  전공도 IT와는 관계 없는 인문 계열이었습니다. 그리고 스물 둘부터 아르바이트를 통해 공연 일을 했어요. 저는 경영학도처럼 엑셀을 척척 다루지도 못하지만 일일 정산을 열심히 해내는 티켓매니저였습니다. 

  저는 '전산학과'에 막연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제 세대만 되어도 사실 전산학과라는 단어를 학과명에는 안썼는데요(컴퓨터공학과였던 것 같네요. 저희는 문이과 분리 캠퍼스라 컴공과를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카이스트 출신 oo 개발자 하면 전산학과를 나왔다고 하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중 아직도 '카이스트'라는 드라마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따가 얘기할거지만요. 

  제가 퇴직할 때는 '개발자하면 돈 많이 준대' 붐의 시작-절정 간의 중간 지점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쯤 절정을 향해 가지 않을까요? 다들 그렇게 회의적으로 보시는 것 같아서 말을 얹어보았습니다. 이 '돈 많이 준대' 플로우를 타려고 든 것은 아니고, 단지 '오늘 내일 하지 않는 안정적인 회사의', '사무실에서', '직장인으로', '앉아서' 일하는 것을 제 목표로 삼았을 뿐입니다. 

  뭐 여러모로 반박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공연이나 전시 산업계는 '오늘 내일 하고', '사무실이라고있는 전시장 벽에 있는 비밀문을 밀면 있는 조그만 창고에서', '알바인지 직원인지 모르는 직급으로', '일어나 있는지 앉아 있는지 모르게 현장과 사무실을 왔다갔다하며' 일했기 때문에 그 반대의 일을 하고 싶었어요. 10년 정도 저 일을 해서 상한 몸, 반대로 돌려놔야겠다 뭐 이런 엄청 어이없는 생각도 했습니다.

  마음을 먹고 처음 개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제주도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을 시기였습니다. '바울랩아이씨티컴퓨터학원'이라는 이름이 길고 멋지고 왠지 기독교적인 학원을 처음 찾아갔어요. 핸드폰으로 '코딩 교육' 이런걸 찾아봤더니 인스타그램 스폰서에 뜨더라구요. 일도2동에 있는 오래된 동네에 있던 학원이었고 이호준 선생님의 수요일 종합반을 수강했습니다. 초등학교 학생들과 왠지 컴공과 같은 대학생들, 그리고 내 또래 같은 분들과 수업을 들었는데 처음 선생님이 했던 말씀대로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배운 것은 HTML, CSS, JS, Bootstrap, Python, Django 였습니다. 지금 보니 정말 비현실적인 커리큘럼이네요. 그런데 이렇게 3개월 간 배우고 나니 제가 뭘 더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역시, 장미가족의 태그교실로 시작한 게시물 꾸미던 마음이 새록새록 살아나면서...... 그래서 국비교육을 통해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 국비교육

  제주도에 있는 중에 서울의 코딩 국비교육에 대해 많이 알아봤어요. 제가 준비를 시작한 2020년 이전만 하더라도 국비교육 후 개발자가 된 분들이 많았는데(인터넷 후기글 연도 상), 코딩을 교육하는 기관들이 워낙 많아지면서 국비교육은 구시대적 교육이고 이거 공부해서는 절대 개발자가 안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부트캠프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아야 '진짜' 개발자가 될 수 있다. 아니다, 집에서 유튜브, 유데미 봐도 개발자 다 한다! 요즘 시스템이 얼마나 좋은데! 같은 정말 대혼란의 시기에서 저는 뭔가 된다는 보장이 필요한 갓 퇴사한 나약한 백수였습니다.

  그리고 국비교육은 기간 내내 무료에 돈을 얹어주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정말 부트캠프를 선택하고 싶어도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돈을 내도 된다지만 나중 일은 모르는거잖아요. 심지어 원래 월급을 기존 월급의 70% 삭감해 받던 상황이라 모아둔 돈도 거의 다 써가는 상태였기 때문에 큰 돈을 함부로 지를 수가 없었습니다. (6개월간 받은 실업급여 한 달치가 원래 받던 100% 월급이랑 비슷하다고 하면 믿으실래요?) 

  제가 선택한 곳은 강남의 ㄱㄹ컴퓨터아카데미였습니다. 선택한 이유는 제가 원하는 시작 시점에 개강을 하는 학원이었고, 상담하시는 분이 의외로 담백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네이버 모 카페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글을 올렸는데, 카페 네임드분이 '거기 좋아요. 잘 가르쳐요.'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믿을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

  그렇게 퍼블리싱+프론트엔드 반으로 등록해서 시작은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대면교육이 불가하여 첫 날 OT와 마지막 날 졸업식을 끝으로 모든 수업은 줌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래도 가는 시간 오는 시간을 아끼니 시간을 2시간 넘게 벌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부모님 집안일까지 도와드리면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집에서요. 

  역시 HTML과 CSS 과정에서는 제가 막힘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홈페이지도 구현을 해봤었고(나모 웹에디터로요) 심지어 퍼블리싱 과정에 있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는 제가 원래 잘 다루던 프로그램이라 별도로 공부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쉽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CSS를 배울 때는 혼자서 SCSS도 공부해보고 부트스트랩도 써보고 했으니까요. 그리고 수업에서 배우는 자바스크립트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국비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혼자서 자바스크립트 공부를 했었거든요. 퍼블리싱에 초점이 맞춰진 수업이다보니 자바스크립트도 기초적인 부분만 가르치시고, 제이쿼리는 특히나 '문서 보는 법'을 배우는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MySQL 쿼리에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수업 중간중간 보는 테스트에서 처음으로 100점을 맞지 못했던 순간이 쿼리문 시험볼때였어요. 그 정도로 다른 수업은 미리 공부를 했던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발자라는 것이 국비교육을 이수한다고 뚝딱~! 되는 것은 아니니 추가적인 공부가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실제 일해보니 국비교육에서 배웠던 부분도 상당히 써먹는 것을 느끼면서 역시 배움과 공부에는 왕도도 정도도 없다는 사실을 몸소 깨우치고 있습니다. 절 가르치셨던 강사님은 열정이 없는 학생들을 열심히 끌어가시는 의욕과 짬바가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언제 한 번 감사인사를 드리러 가야하는데 회사 위치가 역삼으로 옮겨지고는 강남에 갈 일이 없네요...

 

 

- 추가 공부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해서 오후 6시 30분에 줌 수업이 끝나면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고 인프런으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강의를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졸다가 울면서라도 12시에서 1시까지 학원 과제와 인프런 강의를 듣고 잤어요. 어느날은 몸이 안 따라줘서 앉아만 있어도 골반이 통증이 심해 오늘 코딩 공부를 안하면 내일 개발자가 못 될 거 같지만 어쩔 수 없이 진통제를 먹고 자기도 하고 주말에 공부를 안하면 개발자가 못 될거 같아서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화면만 멍하니 보기도 했어요. 포트폴리오를 위한 웹페이지 구현도 해야해고 별도로 공부도 해야하고, 트렌드도 들어야하고 아무튼 매일 매일 시간이 부족해서 속이 답답할 지경이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마구잡이로 강의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 시간을 많이 할애하게 된 강의는 김영보 선생님의 자바스크립트 강의였습니다. 처음에 자바스크립트 공부를 할 때는 막연히 '개어렵다' 라고 생각했는데, 김영보 선생님 강의 듣고는 '진짜 존나 어렵다'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왜 무시하는걸까요? 혹시 아직도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자바스크립트 가지고 브라우저 위에다가 그림이나 그리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김영보 선생님 강의를 꼭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엉덩이를 킥-애스 하실 분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달에도 김영보 선생님의 DOM 강의를 샀습니다. 2.0배속 스킬을 사용해서 연말/연초를 보내 볼 계획입니다. 역시 계획만이고 리액트를 해야합니다. 저에게는 아직 토이프로젝트가 남아있습니다.

  언니에게 아이패드 4세대를 45만원 주고 샀습니다. 거저 주고 산 가격이지만 자매끼리의 돈 거래는 4천 5백원 아닌 이상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써본 아이패드에 애플펜슬로 강의 노트를 적으면서 얼마나 졸았는지 모릅니다. 전 오늘도 12시간 좀 넘게 자는 잠이 정말 많은 사람인데, 공부하면서는 8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들었던 강의 추천

 

  · 인프런 - 김영보 - 자바스크립트 모든 강의

              ⇨ 정말 좋은 강의입니다. 졸음을 주의하세요. 전 한 2030번 들어야할 듯

  · 인프런 - J.영 - 실전! 웹사이트제작! Step by Step!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시대- 레이아웃제작 기초)

              ⇨ HTML, CSS 개념만 알고 적용 못 할 때 이거 두 번 따라하고 레이아웃 뚝딱했습니다. flex, grid는 없습니다.

  · 인프런 - 제주코딩베이스캠프 - 2022 30분 요약 강좌 시즌 1 : HTML, CSS, Linux, Bootstrap, Python, JS

              ⇨ 제가 들었던 수요일 종합반의 내용이 전부 다 들어있습니다. 전반적으로 풀스택을 돌릴 때 추천합니다.

  · 인프런 - 제주코딩베이스캠프 - [초급] 40분만에 훑어보는 Sass

              ⇨ 처음 혼자 Sass 시작해볼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 인프런 - 이지스퍼블리싱 - Do it! 반응형 웹 디자인 - 저자 동영상 강좌

              ⇨ CSS flex 혼자 연습할 때 따라하면서 배웠습니다.

                 이것과 함께 1분코딩님의 강의 페이지도 많이 참고했습니다. 영상 강의도 별도로 있습니다.!

 그 외 노마드코더 무료 강의, 구름, 얄코 등 다수...

 

 

- 걔 뭐한대?

 

  개발자를 시작하게 된 건 6개월 같의 수업이 끝나고, 나름대로 수업에 잘 참여한 학생이 되어 대표로 수료증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포트폴리오 작업물이 3개가 나왔습니다. 하나는 학원 수업에서 HTML, CSS, JS, jQuery, PHP, MySQL을 이용한 웹페이지 제작물이었고(회원가입, 게시판 등을 구현했네요.), 하나는 혼자 만들어본 Sass와 Flex를 이용한 랜딩페이지 하나, 그리고 또 혼자서 공부한 리액트로 만든 영화정보 사이트였네요. 당연히 영화정보 사이트는 노마드코더를 보고 만들었는데, 결과물은 똑같이 내지 않고 노마드코더 강의로 하나 만들어 보고 조금 변형해서 '케이트 블란쳇 필모그래피 웹'을 만들었습니다.

  어쨌든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고 싶은데, 요즘에는 '누가' PHP 쓰냐고 하고 리액트 공부하라는 의견이 너무 많아서 리액트를 공부하기 시작했었습니다. 저도 당시에는 리액트 못하면 개발자 못되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리액트가 너무 어려워서 눈물이 납니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세 개 만들었는데, 의외로 학원에서도 물어다 주는 정보가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2명이 면접본다는 소식도 없이 취업을 했다고 축하하라고 단톡방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퇴사는 했고, '걔 개발자 한다더니 뭐한대?'에 걔가 되고 나니 사람들 보기는 민망하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멍때릴 수 는 없어서 몇 군데 기업에 지원하게 됩니다. 학원에서 취업 코칭을 해준답시고 이력서 폼에 이력서를 적으라고 하는데 정말 그 순간만큼은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울고 싶었습니다. 할 말도 없고 자신있게 내세울 것도 없어서 '성장과정' 이런거 쓰는데 정말 미쳐버리겠더라구요. 지금 회고는 이렇게 주절주절 말이 많은데, 평범한 제 모습을 깎고 닦아서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MBTI와 운세, 사주팔자 이런거 참고하라고 했는데, 전 그냥 합격 이력서 많이 참고했습니다.)

  이력서를 만들어 놓고 나니 지원할 기업을 골라야 했습니다. 저는 스타트업에 가고 싶었습니다. 처음의 목표인 '안정적인 회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늘 프로젝트성으로 일을 하고 치열하게 쉼없이 일하는 삶을 살아서 그런지 안정적인 유지보수업무와는 심리적인 거리감이 약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명 높은 SI는 좀 고민이 되었구요. 그런데 PHP를 기술 스택에 넣어두니 제가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SI 회사만 이력서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스타트업인데 PHP를 쓴다더라구요. 그래서 냉큼 그 회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이력서를 조작해 밀어 넣었습니다. 다행히도 이력서가 먹혔는지 면접을 보러오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그렇게 면접을 보러 갔더니 앉혀놓고 하는 말이 '신입은 안 뽑으려고 했는데 PHP 하는 사람이 없어서 불러봤다. 국비학원은 뭐하는 학원이냐? 그것도 궁금하다.' 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형적인 개발자 면접에서 물어볼 만한 질문을 했지요.

  

 

- 남들은 4년 공부했는데

 

  갑자기 자신감이 훅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6개월이나 공부했는데, 나 홈페이지도 하나 만들었는데! 가 아니고 사실은 제가 로망을 가진 전산학과 출신들이나 컴공과 출신들은 4년 동안 공부한거잖아요. 저는 6개월 공부한거구요. 저도 미술사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그림을 보는 능력 이런걸 가진건 아니지만 남들보다 미술사책을 4년은 더 읽은거니까요. 

  이 회사도 결국 전공자를 찾는거구나, 국비학원은 들어본적도 없이 전공자랑만 일했는데 급한 마음에 날 그냥 한 번 불러본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모든 회사가 똑같은 마음이겠지 싶었습니다. 당연히 이 회사에서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두 번째 회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컨셉의 마케팅 회사였는데, 메타버스 쪽으로 사업을 확장시켜보고자 하는 회사였고, 대표의 이야기가 진솔하고 공감이 많이 되는 면이 있어서 내심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여성 사업가기도 했구요. 면접을 가기 전에 문자로 '테스트가 있다. 어렵지는 않다.'라고 해서 코딩테스트 같은 어려운 알고리즘이면 어쩌지 하며 떨었습니다. 그런데 갔더니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지금 보이는 화면을 구현하기 위해서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실 건지 적어주세요' 같은 문제였습니다.

  사실 그 날은 동생이 암 선고를 받은 다음날이었습니다. 정작 당일은 못 울었는데 면접보러 가는 길과 면접 시간을 기다리는 카페에서 울어가지고 남자친구가 많이 걱정했었네요. 그래서 그랬는지 뭔가 자신도 없고 아는 거 같은데도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거의 헛소리만 적고 나왔습니다. 당연히 종이를 보는 면접 담당자도 별로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이 회사도 떨어졌고 역시 6개월 가지고는 안되겠다, 1년은 더 공부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겠다고 다시 책상에 앉았습니다.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공부를 손에서 놓지는 않았습니다. 동생 병원 따라갈 때만 빼구요) 그러다가 할머니께서 동생 건강 문제로 전화를 주시다가 '너 아직도 책상에 앉아있니?' 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갑자기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역시 남들이 보기에는 '걔 개발자 한대더니 아직도 뭐한대?'의 걔 겠구나. 싶었습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서 어딘가에는 내가 지원해서 개발자 되고 만다! 하는 강렬한 마음의 괴성을 질러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렌지레터' 라는 메일링 서비스에서 본 지금 회사에 지원하게 '위커넥트'를 통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 스타트업에

 

  그렇게 9월 초에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국비학원 근처에 위치했던 회사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화장을 두껍고 곱게 하고 스타벅스에 앉아서 벌벌 떨면서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전 면접에서는 1분 자기소개를 요청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당연히 요구하겠지 하면서 마스크 속 입으로는 주절주절 멘트를 외우고 2번의 면접 전에는 척척 외웠던 웹 기술들에 대한 상식들도 입으로 중얼중얼 하고 있었습니다. 간신히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고 꼬르륵 대지 않으려고 샌드위치도 하나 먹었습니다. 그리고 강남역을 가로질러 신논현역 부근의 회사 사무실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사님이자 개발자이신 분과 대표님이자 디자이너이신 분께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1분 자기소개를 시키시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고, 회사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어떤 결심으로 지원하게 되었는지, 이전에 일하던 분야랑 다른데 이직 결심은 어떻게 하셨는지 같은 질문들이어서 수월하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만드는 페이지의 디자인이 이렇게 나와 있는데 혹시 구현하시게 된다면 순서가 어떻게 될 지 편하게 말로 설명하라고 하셔서 정말 말로 설명했습니다. (저라면 여기를 클릭하면 이 페이지가 나오고 이 버튼을 클릭하면 난수를 생성해서 새 창을 띄워서 쿠폰 이미지에 붙여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같이요.)

  대표님은 저에게 '생각이 잘 맞을 것 같다' 고 하셨고, 이사님은 '더 좋은 곳에 가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길 지원하셔서 좀 의아했다'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전 면접에서 들었던 말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가면서 눈물이 살짝 나올 뻔 했습니다.

  그렇게 스타트업의 개발자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ISFJ고 완전한 내향형이지만, 인싸들만 있다는 한국의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된 것입니다.

 

 

- if문을 중첩해서 쓰다 보니

 

  하지만 역시 신입 개발자는 혼자 일하는 것이 국룰인가봅니다. 조금 좋지 않은 이유로 저를 뽑았던 사수가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사무실 출근해서 노트북 앞에 앉았을때부터 천재라고 칭찬해주시는 바람에 9월 한 달 간은 제 자존감이 초등학교 때 학예회 무대에 섰을 때 만큼 높아졌던 것 같은데 갑자기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홀로 남아 외주 개발자님과 소통하면서 그 분의 지식을 사사받기도 하면서 어찌저찌 살아남는 중입니다.

  EC2도 어떻게 여는지 공부하고, sql 문도 또 오류를 온 몸으로 맞아가며 먹히게 해보고, 구글 시트도 자동화 시켜보고, 카페24 변수는 어떻게 쓰는지, 애플 개발자센터는 왜 이렇게 복잡한지 같은 것들이요.

  제가 공부하면서 가장 의아해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구현한 홈페이지야 뭐 페이지 20개가 안되는 아주 작은 규모였고 리팩토링이라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코드인데, 그게 돌아간단 말이죠. 그래서 왜 리팩토링이 필요하고, 왜 더 좋은 라이브러리들이 생기고, 리액트에 상태관리가 왜 붙어야 하는지. 도대체 당신들이 많드는 앱은 뭐가 다르길래 그런게 필요한지. 그게 너무 궁금했었습니다. for문을 그냥 써도 잘 돌아가는데 왜 for of 문을 써야하고, map을 써야하고 둘 다 결과는 같은데. 

  요즘엔 그것이 왜 필요한지 알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DOM 조작을 위해 if문으로 태그를 바꿔야 하는 작업이 있었는데 처음엔

 

if(a == '1') { document.querySelector('.ex').style.color == 'red' }
if(a == '2') { document.querySelector('.ex').style.color == 'red' }
if(a == '3') { document.querySelector('.ex').style.color == 'red' }
if(a == '4') { document.querySelector('.ex').style.color == 'red' }

 

이런식으로 if문을 무한히 중첩해서 만들었는데 잘 돌아가요. 굳이 수정할 필요 없는 것 같은데 다시 보니 querySelector 부분을 변수로 만들어도 되겠어서 빼고, 또 다시 보니 a == '1' 이나 '2'나 '3' 이나 같은 실행문이니까 조건에 ||(OR)을 붙여서 한 줄로 만들기도 하고, a안에 '1'이 아니라 1이 포함된 경우도 생각해야 하니 a.includes('1')로 바꿔보기도 하면서 코드가 점점 한 줄로 줄어갔습니다. 

 

그러니 아, 왜 리팩토링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게 올해 얻어낸 개발자로서의 성장이라면 성장이겠네요.

 

  그리고 남들은 4년 동안 등록금 내고 배운 지식인데 6개월 공부하고 돈 받고 있는 제가 뚝딱 알 수 는 없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옆 팀 개발자분 보면 '컴공이겠지..' 하면서 침흘리며 부러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까 드라마 카이스트 이야기를 했는데요. 저는 그 드라마를 볼 때 가장 좋아했던 그리고 개발 공부를 하면서 늘 마음에 담아두었던 캐릭터 한 분이 있습니다. 누구냐면, 그게요. 저랑 언니가 워낙 카이스트 드라마를 재미있게 봐서 서점에서 송지나 작가님의 카이스트 회고록 같은 책을 한 권 샀었습니다. 거기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성화 배우의 대사를 받아쳐 줄 배역의 배우가 부족하자 실제 촬영을 하던 랩실의 대학원생에게 이 대사를 쳐주기를 부탁하자 모든 스탭이 놀랄 정도로 적당한 무게의 톤과 호흡으로 완벽하게 녹아드는 연기를 선보였다.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대학원생은 바로 류중희 라는 분입니다. 별 연관은 없지만 개발 공부를 하면서 늘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보다 더 놀라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국비학원 출신의 이직한지 얼마 안된 기대가 안되는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그 기대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했었습니다. 저 책의 그 부분을 매일 머릿속에서 그렸습니다. 출출한지 간식거리 좀 건져와라. 이런 문장을 치면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아무튼 그랬는데, 취업하고 보니 그 분이 저희 회사 투자자라네요.

  저희 팀원들은 저보다 어려서 드라마 카이스트를 본 적 업으니 전혀 공감 못하고 있지만, 저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상이었는데요. 흐흐. 저의 '전산학과 천재' 로망 그 자체이지 않나 싶습니다.

 

 

2021년 회고가 이렇게 끝이 났네요. 

말이 너무 많은 것을 고치는 2022년 되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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